추사 김정희는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약 9년간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대정읍에 있는 추사관은 김정희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하며 남긴 흔적을 모은 곳이다. 그가 살았던 초가집도 옛 모습 대로 복원되어 있다. 추사관에는 김정희 선생이 쓴 현판 글씨와 아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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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eju.go.kr/chusa/index.htm
제주추사관
신비한 자연과 비경을 품은 아름다운 섬 제주도. 지금은 최고의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지만 조선시대에 제주도는 모두가 기피하는 최악의 유배지였다. 옛적에는 농어업 기술이 발달하지 않고 식수도 부족해 사람이 살기에 무척 척박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먼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라 도망치기 어려운 점도 한몫했다. 이런 탓에 당시 제주도는 중죄인이나 당정에 휘말린 정치인과 관료들이 쫓겨 오는 눈물의 땅이었다. 섬이 품은 수려한 풍경 이면에는 슬픔과 고난에 찬 유배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약 9년간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대정읍에 있는 추사관은 김정희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하며 남긴 흔적을 모은 곳이다. 그가 살았던 초가집도 옛 모습 대로 복원되어 있다. 추사관에는 김정희 선생이 쓴 현판 글씨와 아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편지에는 유배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 있어 당시 유배인의 생활을 엿보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고단한 유배 생활에도 그는 자신을 갈고 닦으며 ‘추사체’를 완성하고 유명한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그렸다. 추사관을 둘러보는 동안 김정희 선생과 제주까지 귀양살이를 왔던 수많은 인물들을 되새겨보게 된다. 제주도에 유배를 온 사람들 가운데는 역사적인 인물이 많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한 광해군이 마지막으로 유배당한 곳도 제주도였다. 작은 초가에 위리안치 당한 광해군은 결국 제주도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우암 송시열도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도중에 사약을 받고 죽었다.
미술/박물관,흐림,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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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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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1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63517
064-710-6803
33.25022
126.27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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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마감 17:30 / 하절기(7.1~9.24, *2023년 기준) 9:00~20:00(입장 마감시간19:30)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휴무
신비한 자연과 비경을 품은 아름다운 섬 제주도. 지금은 최고의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지만 조선시대에 제주도는 모두가 기피하는 최악의 유배지였다. 제주가 옛날에는 농어업 기술이 발달하지 않고 식수도 부족해 사람이 살기에 무척 척박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먼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라 도망치기 어려운 점도 한 몫 했다. 이런 탓에 당시 제주도는 중죄인이나 당정에 휘말린 정치인과 관료들이 쫓겨 오는 눈물의 땅이었다. 섬이 품은 수려한 풍경 이면에는 슬픔과 고난에 찬 유배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 윤상도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약 9년 간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대정읍에 있는 추사관은 김정희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하며 남긴 흔적을 모은 곳이다. 그가 살았던 초가집도 옛 모습 대로 복원되어 있다. 추사관에는 김정희 선생이 쓴 현판 글씨와 아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편지에는 유배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 있어 당시 유배인의 생활을 엿보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고단한 유배 생활에도 그는 자신을 갈고 닦으며 ‘추사체’를 완성하고 유명한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그렸다. 추사관을 둘러보는 동안 김정희 선생과 제주까지 귀양살이를 왔던 수많은 인물들을 되새겨보게 된다.
제주도에 유배를 온 사람들 가운데는 역사적인 인물이 많다. 인조반정으로 폐위 당한 광해군이 마지막으로 유배 당한 곳도 제주도였다. 작은 초가에 위리안치 당한 광해군은 결국 제주도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우암 송시열도 제주도에 유배 되었다가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도중에 사약을 받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