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9호. 명월진성은 둘레가 3천 20척, 높이가 8척이었으며, 동쪽과 남쪽 및 서쪽에 각각 성문이 있었다. 성안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었고, 건물로는 객사·별창·군기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명월포는 1270년(고려 원종 11)에 삼별초의 별장(別將) 이문경(李文京)이 고려에서 파견된 관군을 진압하고 탐라를 점령할 때 상륙한 곳이며, 김방경(金方慶)이 삼별초를 정벌할 때에도 그 일진이 이곳으로 상륙하였다. 더욱이 1374년(공민왕 23) 목장을 관리하기 위해 몽고에서 파견된 몽고인 목자[牧胡]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최영(崔瑩) 장군이 상륙한 곳도 명월포였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 29호. 명월진성은 둘레가 3천 20척, 높이가 8척이었으며, 동쪽과 남쪽 및 서쪽에 각각 성문이 있었다. 성 안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었고, 건물로는 객사, 별창, 군기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명월포는 1270년(고려 원종 11)에 삼별초의 별장(別將) 이문경(李文京)이 고려에서 파견된 관군을 진압하고 탐라를 점령할 때 상륙한 곳이며, 김방경(金方慶)이 삼별초를 정벌할 때에도 그 일진이 이곳으로 상륙하였다. 더욱이 1374년(공민왕 23) 목장을 관리하기 위해 몽고에서 파견된 몽고인 목자[牧胡]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최영(崔瑩) 장군이 상륙한 곳도 명월포였다.
예전의 모습은 없지만 현재 복원한 남문 위의 망루에 올라가면 한림읍이 한눈에 보인다. 누구나 올라갈 수 있는 돌계단이지만 따로 안전장치가 있지 않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나 나이 드신 분이 올라가는 경우는 주의해야 한다. 특히 밤에는 오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