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은 제주성과 가까운 곳으로 교통수단을 해로에 의존할 당시 목사나 판관 등 많은 관리가 화북, 조천 포구를 이용하였으므로 이들에 대한 치적과 석별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비석을 세웠는데 이 거리를 통칭하여 비석거리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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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비석거리
조천은 제주성과 가까운 곳으로 교통수단을 해로에 의존할 당시 목사나 판관 등 많은 관리가 화북, 조천 포구를 이용하였으므로 이들에 대한 치적과 석별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비석을 세웠는데 이 거리를 통칭하여 비석거리라 한다. 조천에 7기가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 31호인 조천비석거리는 주로 조선후기 이후에 건립되었다. 선정을 베풀었던 수령들이 갈려간 뒤에 고을 주민들이 그들을 생각하여 세웠던 비석들을 한 곳에 모았다고 하는데 과연 수령들의 진실된 마음으로 목민과 구실을 하였는지, 고을민들이 자발적인 심정으로 이들 비석을 세워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조천은 제주성과 가까운 곳으로 교통수단을 해로에 의존할 당시 목사나 판관 등 많은 관리가 화북, 조천 포구를 이용하였으므로 이들에 대한 치적과 석별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비석을 세웠는데 이 거리를 통칭하여 비석거리라 한다. 조천에 7기가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 31호인 조천비석거리는 주로 조선후기 이후에 건립되었다. 선정을 베풀었던 수령들이 갈려간 뒤에 고을 주민들이 그들을 생각하여 세웠던 비석들을 한 곳에 모았다고 하는데 과연 수령들의 진실된 마음으로 목민과 구실을 하였는지, 고을민들이 자발적인 심정으로 이들 비석을 세워주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