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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람사르 습지 <제주습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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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습지가 많지 않지만, 국내에서 지정된 20여 곳의 람사르 습지 중 무려 5곳이 제주에 편중되어 있다. 람사르 습지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대한 보호조치가 진행되는 곳으로, 멸종위기 등급의 동식물과 희귀한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는 습지들이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마지막 장소, 제주의 습지에서 촉촉한 흙의 생명력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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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자연의 마지막 공존이 있는 곳다섯개의 람사르 습지 <제주습지여행>
나무가 걸어 다니고, 바위들이 살아 숨 쉬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 연못 등, 영화나 동화에만 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곳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제주의 습지에서 이 비밀스러운 곳과 조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제주에 습지가 많지 않지만, 국내에서 지정된 20여 곳의 람사르 습지 중 무려 5곳이 제주에 편중되어 있다. 람사르 습지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대한 보호조치가 진행되는 곳으로, 멸종위기 등급의 동식물과 희귀한 생태계가 보존되어 있는 습지들이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마지막 장소, 제주의 습지에서 촉촉한 흙의 생명력을 느껴보자.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1100도로를 따라 차창으로 따라붙는 청량감이 상쾌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전망대에 차를 멈추면, 우리나라의 국도 중 가장 높은 1100도로의 마루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해발 1100m 고지인 ‘1100 고지’이다. 조심스럽게 길을 건너면, 마치 신선들이 거니는 곳인 듯 고풍스러운 나무데크가 존재한다.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면 습지탐방로를 들어서게 되는데, 탐방로는 한라산 고원지대에 형성된 1100고지 습지를 관통한다. 인간에게 살 터전을 제공해준 자연에 대한 소소한 예의일까, 습지보다 약간 높게 조성된 탐방로 덕분에 습지를 지키면서도 그 생태계를 살펴볼 수 있다. 탐방로를 따라 습지 이곳저곳을 둘러보면, 여러 가지 동화 같은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습지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묘한 새소리와 키 작은 난쟁이들이 단체로 이동하다가 한 순간에 돌로 변한 듯한 돌밭 등 직접 가서 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신비한 분위기가 있다.
1100 고지 습지는 2009년 람사르 습지보호지역으로 선정되어 국내의 열두 번째 람사르 습지가 되었다. 많은 동물들이 개발로 인해 살 곳을 잃어가고 사라져 가지만, 이곳에는 희귀한 식물 생태계는 물론 멸종위기의 야생동물 1급인 매와 2급인 말똥가리, 조롱이, 황조롱이 등이 서식하고 있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1100고지 습지 자연학습로는 나무데크길을 따라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는데, 육안으로 확인되는 습지는 16개 정도의 웅덩이 규모이지만 습지 간의 경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한다. 탐방로는 10여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데, 운이 좋으면 한라산에 살고 있는 매혹적인 노루를 만나볼 수도 있다.
제주도 하면 역시 산의 아름다움과 산을 오르는 그 길의 아름다운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오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습지를 품고 있는 오름이 있다. 물영아리오름은 2007년 람사르 협약 습지로 지정되어 국내에서는 다섯 번째로 지정된 람사르 습지로, 멸종 위기종 2급인 물장군과 맹꽁이 등 다양한 습지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물영아리습지는 정상 분화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탁 트인 오름 속 자리하는 분화구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물영아리의 습지는 외부에서 유입되는 지하수나 하천 없이, 여타 오름의 산정호수처럼 빗물만으로 만들어진 습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물영아리오름이 위치한 중산간지대에는 비와 안개가 잦은 편이다. 맑은 날 보다 흐린 날에 물영아리오름을 방문하면 정글 같은 자연과 안개에 휩싸인 습지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흠뻑 느껴볼 수 있다. 어쩌면 제주의 선조들은 이 풍경을 보고 물의 신령(영아리)이 사는 습지라 하여 이름을 이처럼 지었는지 모르겠다.
물영아리오름은 마르는 일이 없어 오래전부터 소나 말이 가뭄이 들면 이곳으로 몰려와 목울 축였는데, 17세기 조선 문신 이원진의 ‘탐라지’ 속에는 물영아리오름을 ‘수영악’이라고 그려두고 그 꼭대기에는 못이 있다고 기록해 두었다. 물영아리오름은 가는 길 또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스위스의 한 촌마을 풍경을 연상시키는 길은, 마치 기찻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 풍경을 느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초입에 있는 긴 계단을 따라 오르게 되는데, 마치 하늘까지 이어지는 계단처럼 양쪽에 높다랗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고고하게 놓여 있다. 20여분 넘게 계단길을 성실히 오르다 보면 울창한 숲 속에서 벗어나 순간 탁 트인 분화구를 마주하게 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계단은 내리막길로 변해 분화구 속으로 인도한다. 이제 분화구 인근을 조심스럽게 둘러싼 나무데크길을 따라 물영아리 습지의 원형화구호를 살펴볼 수 있다. 원형화구호는 둘레 300m, 길이 40여 m로 알려지고 있다. 이 커다란 원형 화구엔 수많은 희귀 생물들이 살며, 이 고요한 장소에 당도하는 순간 마음이 잔잔해진다.
제주를 만든 설문대할망이 쏘옥 빠져버렸다는 전설을 품은 물장오리 오름. 전설에 따르면 물장오리오름은 밑이 터져 있어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는데, 제주섬의 깊은 물들을 확인하던 설문대할망은 밑이 터진 이 물장오리의 산정호수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단순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끝날 듯 하지만, 그 풍광은 이것이 전설로만 끝나지만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이 화구호의 정확한 수심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물장오리오름의 습지는 물영아리오름과 마찬가지로 빗물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수량을 보유하고 있다. 습지의 주변으로는 송이고랭이, 개서어나무, 고로쇠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멸종위기 야생식물인 산작약도 서식하고 있다. 화산 분화구에 형성된 원형의 산정화구호는 지질학적, 생물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에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고 2009년에는 습지보호지역으로, 2010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물장오리오름은 생태계의 보존을 이유로 출입금지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 환경부의 사전 허락을 받으면 담당 인솔자와 함께 물장오리오름을 다녀올 수 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될 공간이 필요하다면 이곳을 꼭 추천하고 싶다.
2011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던 동백동산은 그 청정함을 인정받아 2013년, 동백동산이 포함된 선흘 1리 마을 전체가 람사르 마을로 시범 지정되었다. 이후 선흘 1리 주민들은 습지생태에 대해 정성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마을 주민들의 생태계 관찰을 통해 먼물깍의 순채나, 통발, 가래 등의 수생식물 생태계가 보고되고 있다. 동백동산은 예로부터 마을 주민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동백동산 속 크고 작은 습지들은 옛 선흘마을 사람들에게 소중한 생명수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사람은 물론 동물들도 함께 목을 축였는데, 지금도 가끔 방목된 소와 말이 찾아와 물을 마신다고 한다. 동백동산에는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습지들이 많다. 그중에 빗물이 고여 형성된 먼물깍 습지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먼물깍 습지 인근에는 샘이 솟아 나는 습지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새로판물’ 습지가 있다.
동백동산의 가장 큰 습지인 먼물깍 습지에 서면 잠시 눈을 낮추어보자. 잔잔한 먼물깍의 수면에 시선을 맞추어 보면, 수면 위로 떠있는 초록의 생명들이 남실남실 피어오르며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이다. 동백동산의 람사르습지는 먼물깍을 포함한 주변 0.6킬로 미터 가량만 지정되어 있지만, 이 외에도 새로판물, 봉 근물, 혹통, 구덕물 등 수십 개의 습지가 있는 선흘곶 동백동산은 전체가 커다란 습지이다. 숲 곳곳을 다니다 보면, 이곳이 관광지라는 생각은 잊혀지고, 원시 속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곳곳엔 빗물로 만들어진 습지가 있고, 산열매와 동식물들의 생동감 있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엔 죽어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바위조차도 이끼에 싸여 그 자체로 숨을 쉰다. 숲 전체가 생명력을 내뿜으며 힘 있게 박동하고 있는 것이다. 동백동산은 탐방안내센터를 통해 습지와 탐방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길이 다소 험한 만큼 등산화나 트래킹화를 챙겨가는 것이 좋다.
<사진제공 : 제주도청>
제주시 애월읍 삼형제오름 부근에 위치한 숨은물벵듸는 독특하게도 오름으로 둘러싸인 곳에 웅덩이 형태로 형성된 습지이다. ‘숨은 물이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뜻의 숨은물벵듸는 21번째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다. 숨은물벵듸는 노로오름 입구 초입에서 한라산의 조릿대 군락을 지나 30분 정도 걸어가면 찾아갈 수 있다. 숨은물벵듸는 물 위의 잔디가 자란 듯 물풀들이 곳곳에 원형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보고 있자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삶을 지켜내는 자연의 생명력과 끈기를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자유롭게 개방되어있음에도 습지의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노로오름과 삼형제오름 그리고 살핀오름의 중앙에 위치한 숨은물벵듸습지에도 역시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 동식물 등 5백여 종의 생물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데, 그 중에는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인 자주땅귀개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숨은물벵듸에는 아름다운 수생식물들이 습지 가득히 자라난다. 수생식물들은 마치 일부러 꾸며둔 정원처럼 정갈하게 숨은물뱅듸습지를 덧칠하고 있다. 어쩌면 이곳은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닌 이곳에 살던 생물들이 그들의 예술적인 감각으로 만들어 놓은 그들의 예술 마을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유의사항
- ※ 위 정보는 2022-03-10 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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