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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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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26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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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굴


제주시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2608-6번지 일대에 소재한 다랑쉬굴은 4·3사건 당시인 1948년 12월 18일,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희생 당한 곳이다. 이 날 군경민 합동 토벌대는 다랑쉬오름 일대를 수색하다가 이 굴을 발견했다. 토벌대는 수류탄 등을 굴속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가도 죽을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었고 굴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하나 둘 죽어갔다.

한 때 이들과 같이 다랑쉬굴에 은신해 있었던 채정옥(남, 1923년생) 씨는 "사건 발생 다음 날 굴속에 들어가 흩어진 시신들을 나란히 눕혔다. 굴 안에는 그때까지도 연기가 가득차 있었다. 희생자들은 고통을 참지 못한 듯 돌틈이나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죽어 있었고 코나 귀로 피가 나 있는 시신도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출처: 제주도·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 Ⅰ』(2003); 제주도·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 종합정비 및 유해발굴기본계획』(2005)>


1992년 제주도 구좌읍 중산간지대에 있는 ‘다랑쉬굴’에서 유골 11구가 발굴된 사건은 제주4‧3사건 당시 은신자에 대한 무분별한 작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확인 결과 이들 유해의 주인공들은 1948년 12월 18일 제9연대의 진압작전에 의해 희생된 도피 입산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희생자들의 신원은 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주민들로서 그 중엔 여자 3명과 아홉 살 난 어린이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었다. 다랑쉬 굴 속에서는 플라스틱 안경, 흰색 단추, 혁대, 버클, 옷감, 고무신, 질그릇, 놋그릇, 놋수저, 가마솥, 항아리, 물허벅, 접시, 놋쇠로 만든 제기용 잔받침, 물통, 프라이팬, 가위, 요강, 철사뭉치, 석쇠, 화로, 구덕, 주전자, 나무주걱 등의 생활용품과 낫, 도끼, 톱, 나대, 자귀, 곡괭이, 숫돌 등 연장류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외따로 떨어져 있던 유골 1구 옆에는 그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철모, 군화, 철창, 대검이 놓여 있었다. 


<출처: 제민일보 4․3취재반,  『4․3은 말한다 ②″』(1994) ; 제주4·3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2003)>


다랑쉬굴
다랑쉬굴
다랑쉬굴
다랑쉬굴
다랑쉬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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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43 #다랑쉬굴 #잃어버린마을다랑쉬<br><br>한여름! 아무도 찾지 않던 다랑쉬굴. 잡초로 뒤 덮여 길마저 사라졌었던.. <br><br>
    #다랑쉬오름 옆 고사 중인 도로를 800m 정도 걸으면 지금은 없어진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마을에 대한 안내석이 나온다.<br>그 왼쪽 옆 샛길을 따라 300~400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외딴곳에 다랑쉬굴 표지판이 나오는데 약간의 돌과 흙무더기처럼 변해버린 다랑쉬굴. 지금은 콘크리트로 덮여 입구가 아예 막혀버려 옛날의 아픔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43평화공원에 재현되어 있는 모형을 보고 그 때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은 동포에 의해 연기로 숨이 막혀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슴이 먹먹하고 조금이라도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다. 많은 진실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규명이 되지 않은 많은 무고한 희생에 대해 하루 빨리 바로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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