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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국민학교는 성산동국민학교로 1946년 2월 개교하였고 1957년 6월에는 학교명을 성산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이 곳에 있던 학교는 1972년 12월 이설했다.
지금은 당시 사용하던 학교건물을 조금 개보수를 한 상태지만,
일본식 건축양식을 사용한 건물의 틀과 바닥, 천정, 복도 등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하지만 주민들을 감금하고 고문했던 감자창고는 허물어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블록공장의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이 곳 성산동국민학교 옛 건물은 성산면 주민들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곳이다.
<출처: 제주도·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 Ⅱ』(2003); 제주도·제주4·3연구소>
성산포동공립고등소학교는 1919년 일본인의 자녀 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설립한 학교로서 성산포에 있었다. 광복 직후 성산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학교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일본인이 운영하던 학교 건물을 인수하여 1946년 1월 15일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같은 해 2월 22일에 성산동국민학교를 개교하였다. 1947년 8월 25일에 석조 4교실을 준공하였고 이후 1956년 2개 교실을 증축하여 학교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1957년 6월 30일 학교명을 성산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1948년 겨울에 서청으로 구성된 특별중대(대장은 최소위, 부관은 강아무개)가 성산포서교에 주둔. 30∼40명 정도로 3개월쯤 머물렀다. 서청 특별중대는 군복을 입었으나 계급장은 달고 있지 않았다. 늘 이동하며 다닌 듯했다. 학교 창고를 유치장으로 사용했는데, 이곳에서 항상 50∼60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수감되어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당시 성산포서교 교사 홍경토의 증언)
<출처: 제주도교육청, 4・3 관련 교육계 피해 조사 보고서, 2001>